국립중앙박물관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 후기 2(아주 김, 데이터 주의)
외규장각 의궤전 후기는 여기 ->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전시 후기
합스부르크전 1편은 여기 ->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 후기 1
2부는 어두운 벽면에 걸린 초상화로 시작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스페인 왕 펠리페 4세, 스페인 왕비 엘리자베트, 그 딸인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있다.
카를 5세가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스페인 영토를,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오스트리아 영토를 나눠주면서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가 분리되었는데, 1700년까지 5대에 걸쳐 약 200년간 이어졌다. 펠리페 4세는 정치적으로 스페인의 전성기는 아니었지만 문화적으로 번성해 예술의 부흥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펠리페 4세와 왕비 엘리자베트의 초상은 서로 짝을 이루는 작품인데, 서로를 향해 몸을 돌린 자세를 하고 있다. 엘리자베트 왕비는 펠리페 4세의 첫번째 왕비인데, 초상화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딱 한번 포즈를 잡아 초상화를 그리고 이후 다른 초상화들은 그 모습을 따라 그린 것이라고 한다.
특히 이번 전시 포스터로 쓰일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앞에는 사람이 많다. 이 초상화는 펠리페 4세와 두 번째 왕비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 사이에서 태어난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를 그린 것이다. 나는 포스터만 보고 같은 작가의 작품인 <시녀들>이 온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그 작품은 스페인 프라도미술관에 있다고 하더라. 찾아보니 포즈도 대칭이었네.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은 페르디난트 2세의 아들로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으로 브뤼셀에 부임했는데,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지역의 수준높은 회화를 수집해 말년에 빈으로 돌아왔다. 이후 카를 6세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수집한 예술품을 빈으로 옮겼는데, 이 수집품들은 현재 빈미술사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다비드 테니르스 2세가 그린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의 브뤼셀 화랑>.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과 당시 구입한 51점의 이탈리아 회화를 둘러보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규모가 크고 다양한 그림들이 다 들어있어서 구경할 것이 많다. 반대편에도 초상화가 있다보니 구경하는 동안 사람들과 자주 부딪히게 되는게 아쉽다.실물이 왔다면 더 좋았을것 같다. 맨 윗줄 두 번째 그림이 이 다음 섹션에 전시된 베로네제의 <동방박사의 경배>라고 한다.
그 다음 섹션에는 정면에 요스 데 몸퍼르 2세의 <산 풍경>이 있고, 우측으로 그림 세 점이 있다. 베로네제의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 <동방박사의 경배>와 틴토레토의 <옷을 입은 남자>다. <산 풍경>이 워낙 큼직해서 약간 떨어져서 감상하면 좋다.
베로네제의 <동방박사의 경배>는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의 브뤼셀 화랑>에도 등장하는데, 동방박사 세 명이 등장하는 그림이 16세기 베네치아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요스 데 몸퍼르 2세는 풍경화를 잘 그리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스위스의 생고타르 고개를 묘사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는데, 화가가 1580년대 스위스 여행에서 받은 인상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림이 상당히 커서 주는 압도감이 있는데,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는 세부 묘사가 좋았다.
<폭포가 있는 풍경> 차분한 색감의 숲과 나무, 폭포와 하늘이 눈에 띈다. 야코프 폰 루이스달은 17세기 플랑드르 출신 풍경화가로 하늘을 넓게 그린 시원한 구도의 풍경화로 유명하고 감정을 담은 서정적인 풍경화를 그려 훗날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루벤스의 그림이 있다(이것말고도 한 점 더 있기는 하다). 이전 이건희전에서 모네의 <수련>을 따로 전시한 것 처럼 조도를 낮춘 공간에 따로 전시해두었다. 그림 크기가 비교적 꽤 큰 편이라 그림 맞은편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구경하기 좋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유명한 스토리를 그린 그림이다. 나그네로 변장한 신들이 프리기아라는 마을을 방문하는데, 문전박대를 당하다가 필레몬과 바우키스 부부만이 이들을 대접한다. 이 그림은 노부부가 줄어들지 않는 포도주를 보고 이들의 정체를 깨닫고 단 한마리 있는 거위를 잡으려는 것을 저지하는 것을 그린 것이다. 루벤스는 공방을 열고 다양한 화가들과 협업했는데, 이 작품은 플랑드르 화가 프란스 스네이데르스가 정물과 동물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루벤스 그림을 보고 나오면 ◇자로 분리된 섹션에 전시된 꽃 정물화를 볼 차례다. 이쪽은 섹션 구분이 이상하게 되어서 인파가 몰리는데, 루벤스 그림 / 꽃 정물화 / 사냥 그림 / 승리 연작 중 인파가 없는 쪽 순서로 구경하면 편하다. 꽃 정물화는 17세기 플랑드르에서 독립적인 장르로 발전했는데, 하나의 꽃병에 각기 다른 계절에 피는 꽃을 모아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꽃다발을 그린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꽃병 아래 떨어진 시든 꽃잎과 곤충 등은 시간이 지나면 시드는 생명의 유한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특히 꽃다발 정물을 잘 그리기로 유명해 ‘꽃의 브뤼헐‘이리고도 불렸던 얀 브뤼헐 1세의 꽃다발 그림. 중국 명대 청화백자인 꽃병과 정물화에 잘 등장하지 않는 검은 붓꽃, 바닥에 떨어진 무당벌레와 메뚜기, 파리, 헤이즐넛, 떨어진 꽃잎이 그려져있다. 개인적으로는 생각보다 크기는 작은데 꽃으로 가득 차 있어서 약간 답답한 느낌이었다.
얀 판 덴 헤케의 꽃다발 그림두 점. 왼쪽 그림에는 공격받고 있는 도시가 그려져있다는 게 특이하다. 얀 브뤼헐 1세가 꽃다발 정물 그림을 유행시켰고 얀 판 데 헤케를 꽃다발 정물을 변형해서 꽃다발은 덜 풍성하지만 세련되어보이게 구성했다는데, 나는 이쪽이 더 취향이었다.
얀 리벤스와 얀 판 덴 헤커가 그린 <화환 속 남자>. 튤립, 수선화, 카네이션 등 여러종류의 꽃으로 꾸며진 화관 속에 초상화가 들어있다. 이렇게 화환 안에 들어간 초상화 양식은 안트베르펜 지역 화회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양식이라고. 안에 그려진 젊은 남성은 초상화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 화가 얀 리벤스가 그린 것이다.
꽃 정물화 소품 여러 점을 ◇ 모양의 가벽에 전시하고 가운데에 꽃꽂이를 해 둔 것은 정말 좋았는데, 관람객이 많으니 통제가 안 된다. 평일 낮 시간대였는데도 이 부근은 동선이 꼬이고 사람이 몰려서 난리였다. 이건 박물관측에서 안내를 좀 더 신경쓰거나 사람들을 분산시켜야 할 듯.
꽃 정물화 섹션의 다른 출입구로 나가면 <승리> 연작의 모사품이 전시되어있다. 현재 햄프턴 궁전에 소장되어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가 그린 <승리> 연작을 작은 크기로 모사한 것인데, 1598년 이전 안드레아 만테냐의 제자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만테나의 그림은 판화로 옮겨지면서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캔버스에 라미네이트 한 것이라 약간 입체감이 느껴지기는 하는데, 크기가 작은 편이라 알아보기 쉽지 않다. 대신 설명이 아주 자세하게 되어있어서 설명된 부분 위주로 구경했다.
귀여운 동물 그림을 많이 볼 수 있는 사냥 그림들. 사냥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고급 취미로, 사슴사냥은 귀족 이상만 가능했지만 새 사냥은 부르주아 계층도 즐길 수 있었다. 자신의 부유함과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사냥 그림을 집에 장식하다보니 수요가 많았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이 사냥 도구 그림. 총과 새장, 미끼를 넣는 주머니, 호루라기 등 매 사냥과 연관된 도구가 벽에 걸린 것처럼 그려져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그린 ‘트롱프뢰유’, 즉 눈속임 기법으로 그린 그림인데, 사실적인 세부 묘사가 특징이라고 한다. 물론 실물과는 당연히 차이가 있지만 비교적 입체적인 느낌이 살아있어서 재미있다.
사냥 그림과 아주 약간 떨어진 곳에 이 작은 소품이 걸려있는데,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 세 점 중 하나인 코르넬리스 데 헤엠의 <아침 식사>다. 레몬, 포도, 자두 등 가벼운 음식들이 그려져있는데, 테이블 밖으로 삐져나온 칼과 껍질을 벗긴 레몬은 네덜란드 정물화에서 주로 쓰이던 소재고, 짙은 푸른색의 리본과 자두, 작은 크기의 그림은 코르넬리스 데 헤엠 특유의 특징이라고. 제목이 아침 식사인데 굴이 있어서 아침에 생굴? 이라고 생각했는데, 과일과 치즈, 해산물 등을 그린 정물화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각각이 나타내는 의미도 있다고 하던데 해산물이라 들어갔나보다.
이것저것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던 <제철소와 도둑이 있는 산 풍경>. 섬에는 높은 산맥 아래 정착촌이 보이고, 용광로, 물레방아 등 제철소와 제철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되어있다. 16세기 후반 알프스 산맥 근처에는 제철소가 많았는데, 이 그림은 그 당시 풍속을 반영한 풍경화로 보인다. 실제로 보면 제철소보다 왼쪽 구석에서 강도를 피해 도망치는 짐꾼이 시선을 잡아끈다.
복잡한 구역이 끝나면 ㄷ자로 대형 그림들이 배치된 구역이 나온다. 여기는 ㄷ자 모양의 가벽을 쭉 둘러 대형 그림들이 걸려있고, 그림을 보기 좋도록 가운데에 소파를 두어서 잠깐 쉬기도 좋고, 큰 그림을 약간 뒤에서 감상하기에도 좋았다.
이 때부터는 비교적 인지도가 높은 인물들의 초상화가 나온다. 시작은 마리아 테레지아. 아버지인 카를 6세가 아들 없이 죽고 나자 전쟁 끝에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보헤미아의 왕위를 계승해 왕이 되었다. 그러나 여자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될 수 없어서 남편인 프란츠 슈테판이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즉위하게 되었다. 아니 아버지 작위가 딸한테 가는건 안되고 사위한테는 된다는 것도 웃기다.
요새 하우스 오브 드래곤도 그렇고 왕이 딸을 후계자로 세우고 죽었는데 여자는 왕이 못 된다고 우기는 사람들과 전쟁하는 스토리를 보면 웃기는 게 정통성 어쩌구하지만 따지자면 그 왕의 아들이 정말 왕의 자식이라고 어떻게 확신하지? 반면에 여자가 왕 하면 아버지가 누구든 100% 왕의 자식인데 혈계 계승을 할 거라면 합리적으로 왕위는 모계계승이어야지. 의학기술이 발전해서 애 낳다 죽는 케이스가 좀 덜했어도 비교적 나았을 것 같다.
뭐 어쨌든 마리아 테레지아는 즉위 이후 왕이 머무르던 쇤브룬 궁전을 수수한 양식으로 개조하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집품을 벨베데레 궁전으로 옮겨 전시하다가 아들 요제프 2세때는 대중에게 무료로 개방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왕립 박물관이 된 셈.
마리아 테레지아는 자식을 16명이나 두었는데, 그 중 가장 총애했던 딸인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과 작센 공작 알베르트의 약혼을 축하하는 공식 연회를 그린 것이다. 중앙에 요제프 2세와 황후가 그려져있고, 황제의 오른쪽에 신랑신부가, 남은 자리에는 대공들이 왕위 계승 순서대로 앉아있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 적힌 명단이 이 식탁에 앉은 12명의 이름이다. 그림에 마리아 테레지아가 없는 것은 남편의 상중이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림에 그려진 신하나 시종은 검은색 상복을 입고 있다.
그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아 안토니아의 초상화다. 이 그림은 1778년에 그려진 것이니 프랑스의 루이 16세와 결혼한 이후에 그려진 것이다. 실크로 만든 프랑스식 드레스를 입고있는데, 아주 큰 대형 초상화인데다가 그림의 디테일이 엄청나다.
이렇게 그림 앞에 놓인 소파 옆에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는데, 클래식을 들으면서 초상화를 감상할 수 있다. 바흐, 모짜르트, 베토벤, 브람스 말러 등 다양한 작곡가의 곡들이 있는데,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주 부유함이 음마다 뚝뚝 떨어지는 곡들‘이었다.
초상화 외에도 금으로 만든 잔 세트와 세안도구, 조가비로 만든 셔벗용 식탁 장식, 달팽이 껍데기로 만든 함, 성 안드레아의 청동 상 등 화려한 유물들도 전시되어있다. 조명때문에 사진으로 찍기는 어렵지만 실제로 보면 왕족들이 사용한만큼 사치의 극치를 달리는 물품들이다.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아 유럽 전역이 술렁이고 있던 1792년, 프란츠 2세가 등극하는데, 이후 나폴레옹이 등장하면서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는 연이은 전쟁에 시달린다. 이후 오스트리아는 많은 영토를 프랑스에 빼앗기게 되고, 나폴레옹이 1804년 스스로 프랑스 황제로 등극하고 라인 지방 국가들을 통합하여 라인 동맹을 결성하자 프란츠 2세는 오스트리아 영방을 결집해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하고, 프란츠 1세로 즉위한다. 이후 1806년 결국 신성로마제국은 해체되고, 오스트리아 제국이 시작된다. 전시에 프란츠 2세와 나폴레옹 초상화를 마주닿는 코너에 걸어두다니 연관성은 알겠지만 프란츠 2세가 불쌍하다 싶다.
바로 옆에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걸려있는데, 크기도 크기지만 아주 섬세하다. 1515년 레오 10세 교황의 의뢰로 만들어진 것으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 베드로와 사도 바울의 삶과 기적의 장면을 르네상스의 대가 라파엘로가 그리고 브뤼셀의 직조공 피터르 판 앨스트가 만든 태피스트리 10점 중 일부다. 높이가 5미터, 모두 합친 길이가 42미터일 정도로 대작이었는데, 그 중 7점이 시스티나 예배당에 설치되었다. 물론 이번에 전시된 2점은 그 복제품인데, 프란츠 2세가 1804년 나폴리 왕비에게 매입하여 빈미술사박물관 소장품이 되었다.
전시된 것은 사도 바울이 아테네에서 설교하는 장면과 예수가 갈릴리 해변에서 어부 시몬 안드레를 도와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해주는 장면을 나타낸 2점이지만 벽에 베드로의 삶을 나타낸 그림 5점, 사도 바울의 삶을 나타낸 그림 5점이 간략하게 붙어있다. 시스티나 성당에 가면 실제로 볼 수 있을까?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씨씨라고도 불리는 엘리자베트 황후의 초상화가 있다. 황후 초상화가 더 크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1848년부터 68년간 오스트리아 제국을 다스렸고, 합스부르크 왕가를 통틀어 가장 오래 재위한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황태자인 아들은 자살했고, 그 다음 후계자로 세운 조카인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한 이후 황위는 다른 조카의 아들 카를 1세에게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카를 1세는 즉위 2년만에 제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면서 오스트리아 제국이 끝난다.
프란츠 요제프 2세의 가장 큰 업적은 빈을 현대적인 도시로 재건하여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변화시킨 것이다. 는 1857년을 시작으로 약 30여년이 걸린 대공사였는데, 도시의 성벽을 철거하고 반지 모양의 토로 링슈트라세Ringstrasse를 만들었으며, 도로를 따라 빈미술사박물관, 빈자연사박물관, 시청, 국회의사당, 대학, 오페라 극장 등 많은 건축물들을 지었다.
이 그림은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아들, 루돌프 황태자와 결혼한 스테파니 황태자비다. 루돌프 황태자가 내연녀와 자살한 이후 재혼해서 헝가리에서 잘 살다가 러시아군에게 쫓겨나 말년은 수도원에서 마감했다고 한다. 크기가 꽤 큰 그림인데 가로 길이는 짧으면서 그림 윗부분이 아치형인 게 특이했다.
1892년, 조선은 청나라와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스트리아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과 오스트리아는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다. 수교 선물로 고종은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조선의 갑옷과 투구를 선물했는데, 고종이 직접 입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에 만들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투구와 갑옷이라고 한다.
여기까지가 이번 합스부르크 전시의 끝이다. 전체적으로 꼼꼼히 둘러본다면 약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사람이 너무 많다면 조금 더 걸릴 수도 있겠다. 나는 정말 사람이 많은 부분은 일단 지나친 다음 전시를 끝까지 보고 미흡했던 부분만 다시 한번 돌아보았더니 1시간 50분 정도 걸렸다. 주말이라면 2시간~2시간 30분 정도 생각하면 될 듯. 사진에 있는 카드는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왼쪽으로 비치되어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다들 가져가서 아슬아슬하게 4종류를 가져왔다. 그런데 나중에 박물관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아마 8종인 듯. 일찍 왔다면 다 모을 수 있었는데 아쉽다. 합스부르크전을 보러 갈 거라면 주말보다는 평일에, 평일이라면 아침 일찍 와서나 아예 3~4시쯤 들어가는 게 가장 나을 듯 하다. 오디오가이드는 비추천.
전시 끝나고 나와서 도록을 보러 갔다. 도록은 하드양장본에 올컬러 인쇄여서 그런지 39,000원이었다. 나는 그림 도록은 잘 안 사서 구매하지는 않았는데, 이 두께에 올컬러인 걸 생각하면 가격은 괜찮은 편이다. 도록 외에도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100배 즐기기>라는 책도 같이 팔고 있었는데,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100배 즐기기>가 아이들 용으로 괜찮아보였다.
그 외에 엽서가 굉장히 다양했다. 소 사이즈와 중 사이즈 외에도 펜타큘러 엽서도 있더라. 가격은 각각 2,000원 / 3,000원 / 4,000원. 캐릭터 엽서도 굉장히 다양했는데 귀엽긴 한데 박물관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빈미술사박물관에서 파는 기념품을 많이 가져왔는지 이번 합스부르크전에는 없는 씨씨 황후의 초상이나 클림트의 그림으로 만든 상품이 꽤 많았다. 나는 내가 보지 않은 유물로 만든 소품은 굳이 사지 않는데, 그래도 클림트 그림이 있는 상품은 인기가 많은가보더라.
팔찌나 인형, 키링 같은 장신구들도 팔고있었는데, 얀 리벤스와 얀 판 덴 헤커의 <화환 속 남자>에서 인물 부분만 제외하고 화환 모양만 살린 거울이 있었다. 굉장히 특이했는데 아쉽게도 비매품이더라. 그런데 초상화 그린 얀 리벤스 입장에서는 좀 불쾌할수도 있겠다 싶다. 아니 그림에서 내가 그린 부분만 빼고 기념품을 만들다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특별전 치고는 티켓 가격이 꽤 비싼 편이라 갈까말까 망설였는데, 전시품도 많고 합스부르크 가문과 오스트리아, 유럽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전시였다. 그래도 정가로 보기에는 좀 비싸고, 의궤전 티켓과 통합권으로 구매해서 같이 보고 오면 더 좋겠다. 다음 특별전은 내년 봄이나 되어야 하겠네. 이전은 남미권이었고, 이번은 유럽권이니 이제 동남아시아나 아랍권 특별전을 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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