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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후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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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 어느 수집가의 초대 - 어느 수집가의 초대 후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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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후기(1)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후기 (1) 삼성가에서 고 이건희 회장 명의로 세금 대신 작품을 기증한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이난 1년동안

chordq0539.tistory.com

 

제 2부, ‘저의 수집품을 소개합니다’ 시작이다. 수집품에 담긴 인류의 이야기를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 ‘자연을 활용하는 지혜’ ‘생각을 전달하는 지혜’ ‘인간을 탐색하는 경험’ 이렇게 4가지 섹션으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되어있다. 대부분이 회화작품이고, 도자기와 서책 같은 기록문화재가 많은 편이다.

 

 

가장 먼저 나오는 문화재는 토우 장식의 토기. 그릇 받침과 굽다리 접시다. 삼국시대, 4~6세기 경의 토기인데, 자세히 보면 말이나 소, 개구리, 토끼 등 귀여운 토우가 붙어있다.

 

이중섭, <황소>, 1950년대

 

그리고 전시되는 줄 모르고 있었던 이중섭의 황소. 이 작품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인데, 새악보다 작아서 놀랐다. 그래도 굵직한 선이 주는 임팩트가 있다.

 

김기창, <소와 여인>, 1960년대 초

 

소와 여인을 그린 추상화. 크기가 꽤 큰 편인데, 역시 사진으로는 작품의 느낌이 잘 안 담긴다. 이 작품은 정말 실물을 봐야한다. 추상화라서 소나 여인이 대놓고 그려져있지는 않지만, 황소와 여인의 얼굴이 어렴풋하게 보이면서 어우러진다.

 

이인문, <소나무 아래에서 폭포를 보다>, 조선 18세기 말~19세기 초

 

물가에 자란 소나무 아래에서 유유자적하는 사람이 그려져있다. 소나무가 아주 세밀하게 그려져있고, 폭포 물줄기의 강세가 상하단에 다르게 그려져있어서인지 사실적이라는 느낌이 물씬 든다. 

 

윤제홍, <구담봉>, 조선 19세기 전반

 

단양 남한강가에 솟아있는 높이 338m의 바위를 그린 그림이다. 사실 그림보다는 화가가 구담봉을 묘사한 글귀를 보면서 옛날 사람이라고 다 한자를 잘 쓰는 건 아니군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장승업, <온 세상을 웅혼하게 바라보다>, 조선 19세기 후반

 

 

불쑥 솟아오른 바위에는 날개를 편 매가, 바위 그늘에는 달아나는 토끼가 달아나고 있다. 처음에 봤을 때는 길이가 꽤 큰 작품이고, 매가 높이 있어 매와 토끼가 한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우뚝 솟은 바위만으로도 위엄이 느껴진다.

 

박노수, <산정도>, 1960

 

커다란 바위산과 초승날, 말에 탄 여인이 그려져있다. 제목의 산정은 산의 정령, 산도깨비를 뜻하는 것으로 생명의 원천인 천지의 기운을 인간 모습의 정령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어려운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과 도전정신, 자연의 신비와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은 이런데, 사실 이런 설명을 읽지 않고 작품 앞에 서도 직관적으로 와 닿는 느낌이 있다. 

 

<분청사기 조화 기법 편병>,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전반

 

거친 갈색 바탕에 백토를 바르고 표면을 선으로 긁어 표현하는 조화 기법을 사용한 분청사기다. 자유분방한 표현이 인상적이다.

 

강요배, <홍매>, 2005

 

나에게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캔버스에 쌓아올린 아크릴 물감이 질감이 매화나무 줄기를 나타내고, 약간씩  보이는 붉은 색이 매화꽃을 나타냈다고. 위에 있는 분청사기들과 나란히 전시한 데에 의미가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 와 닿지는 않았다.

 

정선, <인왕재색도>, 1751

 

대망의 인왕재색도. 장맛비가 갠 후 물안개가 핀 인왕산을 그렸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폭포, 바위들이 눈에 띈다. 정선의 역작이라고 불리는 인왕재색도는 기대했던 것과 실물을 봣을 때의 인상이 굉장히 다르다. 꼭 실물로 보는 것이 좋겠더라. 

 

유영국, <무제>, 1993 / 오지호, <화물선>, 1970

 

이중섭, <섶섬이 보이는 풍경>, 1951

 

바다와 바닷가 풍경을 소재로 한 작품이 4점 전시되어있고, 가운데 벤치를 두어 앉아서 관람할 수 있다. 소품이라 가까이 가야 세세한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벤치에 앉아서 멀찍히 감상하는 것도 좋았다.

 

 

다음 섹션으로 지나가는 동선 한쪽 벽면에 신석기시대 토기부터 시작해서 청자, 상감청자, 백자로 이어지는 도자기의 발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전시해두었다. 옆사람의 말을 인용하자면 교과서에서 보던 것들이 다 있더라.

 

정광호, <나뭇잎>, 1997

 

벽 한 면을 다 채우고 있는 거대한 나뭇잎이다. 구리선으로 잎맥과 형태만 나타냈는데, 면이 없어서 오히려 나뭇잎을 더 잘 묘사한 것 같다. 이걸 작가는 ‘비조각적 조각’이라고 부른다고. 흰 벽에 드리워지는 구리선 그림자가 나뭇잎 모양을 훨씬 입체적으로 만든다. 선으로 만든 작품인데도 조각상처럼 입체감이 느껴진다. 한 벽을 다 차지할 정도로 큰 작품이라 설치를 어떻게 했을까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구리선을 잘 말아서 운반한 다음에 다시 펼쳤다고 한다. 신기해라.

 

김규진, <난초, 대나무와 바위>, 1922

 

특이한 색의 대나무가 눈에 뜨이던 작품이다. 대나무를 겸허한 스승에, 난초를 의기투합한 친구로 빗댄 작품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소와의 소재와 주제를 사용했지만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고 크기를 크게만든 것이 특징인데, 국내 최초의 사진작가였던 김규진이 미술관 전시를 위해 제작한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 미상, <십장생도 병풍>, 조선 19세기

 

오래살거나 변치 않은 자연물을 그린 십장생도는 만수무강을 비는 그림이다. 해, 산, 물, 돌, 소나무, 구름, 불로초, 거북, 학, 사슴을 십장생이라 하는데, 이 병풍은 십장생에 대나무와 복숭아가 더 그려져 있다고. 색이 굉장히 강렬한데도 은은한 느낌이 있어서 놀랍다.

 

권진규, <손>, 1963년

 

힘차게 뻗어진 손 조각상이다. 무언가를 쥐려는 듯 힘차게 뻗어진 손이 굉장히 진취적이다. 이번 전시에서 본 조각상 중 가장 임파워링 되는 작품이었다.

 

최종태, <생각하는 여인>, 1992

 

청동 소재의 조각상. 반가사유상의 형태와도 비슷한 생각하는 여인을 조각했다. 옷이나 바닥의 깊은 생각에 빠진 표정이 인상적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탐나는 작품 중에 하나였다.

 

 

 

 

 

삼국시대의 일광삼존상, 통일신라 시대의 보살상, 부처상을 시작으로 불교 조각과 경전이 전시되어있다. 불상 세 점은 크기가 작은데도 섬세한 조각이 돋보이는데, 아쉽게도 사진에는 잘 찍히지 않더라. 경전은 대부분 한자 아니면 중세국어로 써 있어서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아 이런 것이 있구나 하고 지나갔다.

 

<업경대>, 조선 17세기

 

대웅전이나 지장전 안에 두는 장식품이다. 죽은 이가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을 때 살아 생전의 죄를 비추는 거울인 업경 앞에 선다는 내용이 있는데, 업경대를 보면서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되새기게 하는 용도라고 한다.

 

<수월관음도>, 고려 14세기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수월관음도가 나왔다. 수월관음도는 관음보살의 또 다른 이름으로 하늘의 달이 여러 곳의 맑은 물에 비치듯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이 수월관음도는 아래쪽이 손상되어서 선재동자가 없지만 관음보살이 걸친 베일 아래 옷 문양이 섬세하게 잘 드러나있다. 가장 아래의 치마에는 거북등껍질무늬와 연꽃무늬가, 치마 위 흘러내린 옷깃에는 꽃 넝쿨무늬가, 가장 위의 투명한 비단옷은 하얀 선과 금으로 넝쿨무늬를 그려 넣었다. 다른 작품들도 대단하고 좋지만 이 작품 하나만을 봐도 충분하다 싶은 존재감이다.

 

작가 미상, <채용신의 평생도 병풍>, 20세기 초

 

평생도는 이상적인 사대부의 삶을 그린 그림으로, 주로 병풍으로 만든다. 이 작품은 채용신의 개인사를 10폭짜리 병풍으로 그렸다는 점이 독특하다. 20세기 초 작품인지라 전통식 복식과 서양식 제복, 외국 공사관의 모습이 그려져있는 것이 독특하다. 아주 인기가 많은 작품이기도 했다.

 

이인성, <인물(남자 누드)>, 1940년대

 

평생도 병풍 반대편으로 초상화가 이어진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 모델이 화가 자신인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얼굴과 얼굴을 감싼 손을 어둡게 표현해서 괴롭고 갈등하는 상황에 있는 남성을 그렸는데, 나는 저 뒤에 서 있는 한복 입은 여성도 궁금하더라.

 

방혜자, <하늘과 땅>, 2010

 

김환기, <산울림 19-II-73#307>, 1973

 

큰 소파를 두고 벽면에 큰 작품 두 개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왼쪽에는 <하늘과 땅>이, 정면에는 <산울림 19-II-73#307>을 감상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전시가 거의 끝나가다보니 지친 사람들이 다 소파로 몰려있고, 오랜 시간을 작품 앞에서 보내다보니 인구밀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덕분에 감상에 집중하기에는 조금 힘들더라.

 

이응노, <군상>, 1985

 

건너편 <하늘과 땅>, <산울림 19-II-73#307>보다 더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군상> 시리즈 중하나라고 한다. 수많은 사람이 그려져있지만 저마다 각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독립적인 개개인과 무리지은 인간이 가지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게 와닿는다.

 

박종배, <천국의 계단>, 1980년대 / 존 배, <가측성>, 1981

 

두 작품 다 작품의 구조가 독특해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집중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그냥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백남준, <브람스>, 1993

 

한자와 악보를 덧붙여 과거와 현재, 동서양을 넘나들며 확장하고 뻗어나가는 인류의 문화를 상징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백남준 작품은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던데, 규모가 작아서 그런가 귀여웠다.

 

백남준 작품을 마지막으로 특별전이 끝났다. 밖으로 나오면 재입장이 안 되니 혹시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 한번 더 보고 오면 좋다. 

 

 

밖으로 나오면 출구쪽에 기념품삽이 있는데, 도록과 각종 소품들을 팔고 있다.

 

 

작은 청화백자 접시. 그림에 따라 국화 / 모란 / 동정추월 3가지 모양이 있다. 

 

 

그리고 달항아리, 각병 모양 인센스 홀더, 인센스 스틱. 의외로 굉장히 인기가 많더라. 

 

 

가장 탐나던 미니소반. 가격은 안 귀엽다. 

 

 

각종 엽서와 마그넷도 있다. 이것들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판매하던 굿즈를 가져와서 판매하는 듯 했다.

 

 

도록은 2만 5천원. 중간 크기의 도록 한 종류다. 사진도 있고, 설명도 자세해서 전시가 마음에 들었다면 한 권쯤 구매해도 좋겠다.

 

10시 30분에 입장해서 감상하는 데 1시간 30분 조금 못 되게 걸렸다. 전체적으로는 안목이 높고 돈이 많은 사람이 컬렉터가 되면 어떤 것을 수집하는지 알겠다 싶은 전시였다. 사실 현대미술 작품에 큰 취미가 없어서 큰 기대 없이 보러 간 전시였는데, 와닿는 작품이 많아서 즐거웠다. 뭐랄까 막상 기대하고 간 모네의 수련이나 인왕재색도는 무던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취향을 발견한 느낌이다.

 

다만 전시 첫날, 오픈에 가까운 시간대여서 사람이 굉장히 많아서 관람하기는 좀 불편했다. 일명 ‘관크’도 심했지만 동선 자체도 불친절하다. 작품 설명도 위치가 이상하거나 설명이 좀 부족한 느낌이 있었고. 중간중간 있는 직원들도 딱히 관객 지도를 하지 않는 느낌이라 인기있는 작품 앞에서는 사람 몰릴 때 잘못하면 싸움나겠더라. 전시 컨셉이 샤바샤바 느낌인 것도 좀 그렇지만, 그건 워낙 대단한 컬렉션을 받았으니 어쩔 수 없지 싶기는 하다.

 

1달만 전시되는 수월관음도를 보기 위해서라면 5월 중으로 가는 게 좋겠고, 나는 천수관음보살도로 바뀌면 한번 더 보러갈 것 같다. 그때쯤 메소포타미아 전시실도 개장할테니, 전시 한번 더 보고, 메소포타미아실도 다녀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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