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박물관, <지금 우리 좀비는> 전시 후기
한국영상자료원 건물 1층에는 한국영화박물관이 있는데, 2022년 10월 21일부터 2023년 3월 26일까지 <지금 우리 좀비는 : 21세기 K-좀비 연대기>라는 제목의 전시를 하고 있었다. 영화 보러 갔다가 대기 시간에 할 게 없어서 들렸는데, 좀비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좋아할 것 같은 전시라 좀비물 좋아하는 친구가 봤다면 좋았겠다 싶었다.
기본적으로 한국영화박물관은 무료 전시. 월요일은 휴무고, 화~금요일은 10:00 - 18:30 / 토~일요일은 10:00 - 17:30 동안 관람 가능하다. 오디오가이드도 있다는데 관심이 있다면 QR코드로 접속하면 될 것 같고, 윗 사진에 작게 보이는 로봇이 가이드를 해 주기도 한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기획전시실이 시작된다. 좀비물을 다루는 전시답게 슬레이트와 쇠파이프로 나눠진 섹션이 인상적인데, 가장 좋았던 건 뭐니뭐니해도 관람방향과 섹션이 바닥에 표시되어있다는 것? 요새 전시들은 동선 안내를 안 해 주는 경우가 많아서 잘 모르는 분야의 전시를 보면 굉장히 헷갈리는데, 길지 않은 전시지만 구획 분리가 잘 되어있어서 좋았다.
가장 처음은 좀비 영화의 시초가 되는 작품들도 시작한다. 1932년 <화이트 좀비>와 1942년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짧은 영화 영상이 같이 전시되어있다. 아무래도 근 백년 전의 작품이다보니 현재의 좀비영화와는 조금 결이 다른 느낌인데, CG 대신 분장을 해 두어서인지 위화감이 덜하다.
그 뒤로도 좀비 영화 포스터와 간략한 영화 설명, 영상클립들이 전시되어있다. 총 12편이던가? 나는 좀비물을 그다지 챙겨보지 않아서, 이름을 들어본 것이라곤 가장 최근 3작품 뿐이고 실제로 본 것은 월드워Z뿐이었다. 이게 아마 학창시절에 봤던 것 같은데 개봉년도를 보니 아니었나보다. 이걸 대체 누구랑 봤었지... 기억나는 거라곤 브래드피트가 나오고... 좀비가 처들어온다는데 노래하는 이슬람 교인들을 보고 미국영화구만... 싶었던 것 뿐이다. 좀비물.. 그나마 아는게 워킹데드인데 그것도 두편 보고 껐던가...
두번째 섹션은 <부산행>과 그 프리퀄인 <서울역>에 관한 내용이었다. <부산행>은 재밌게 봤는데 <서울역>은 안 봐서 어떤 내용인지 모르겠네... 한국형 뛰어다니는 좀비와 CJ 신파가 적당히 버무려져서 좀비물을 그다지 챙겨보지 않는 사람들도 재밌게 볼 수 있었던 부산행. 확실히 대박을 치긴 했었다. 그게 벌써 6년전이라니.
<서울행>의 스토리보드가 줄에 걸려 전시되어있었고, <부산행> 촬영에 사용된 실물 의상이 철로 위에 전시되어있었다. 공유와 마녀에 나온 아역 배우, 마동석, 정유미, 안소희랑... 야구선수 남자 배우 누구였지..의 복장이다. <부산행> 보기 전에 소희가 나온다고 해서 연기 잘하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아주 괜찮았던 기억이 난다.
<부산행> 이후 등장한 K-좀비들. 넷플릭스에서 대 히트를 친 <킹덤>과 <기묘한 가족>, <#살아있다>, <반도>, <지금 우리 학교는> 등 한국 좀비 컨텐츠들도 있다. 사실 여기까지는 포스터와 간략한 영화 내용, 흥행 수준 정도가 적혀있어서 굳이 이걸 기획전시로 할 것까지 있나 싶었다. 좀비 컨텐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다 알고있는 내용이겠고, 좀비에 관심이 없다면 안 궁금할 것 같은 내용들이라... 나는 다 읽어보긴 했는데 오 이 영화는 꼭 봐야겠다 싶은 건 없었다.
그 뒤로 나온 관계자 인터뷰들. 스토리 / 공간 / 좀비 디자인 / 테크놀로지 이렇게 네 가지 측면에서 K 좀비 콘텐츠를 분석한 영상들이다. 이 인터뷰 하나만으로도 이 전시를 보러갈 이유가 충분할 정도로 유용했다. 한국 컨텐츠에 등장하는 좀비들은 스토리적으로는 일명 신파라고 불리는 인간정서에 집중하는 내용이 많고, 기차나 궁궐, 아파트 등 한국적이고 일상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면서 좀비들이 기존의 좀비들에 비해 다이나믹하게 움직인다는 특징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좀비 디자인에 대한 영상이 좋았다.
꽤 긴 <지금 우리 좀비는> 스페셜 영상. 거의 10분이 다 되는 길이인데, <부산행>, <서울역>, <창궐>, <기묘한 가족>, <#살아있다>, <반도>의 일부를 모아놓은 영상이었다. 여기서 본 건 부산행뿐이라 꽤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다.
본브레이킹 댄스팀 '센터피즈'의 리더 진영의 K-좀비 안무들. <곡성>, <부산행>, <킹덤>, <반도>, <지옥> 등 많은 작품에서 좀비 동작 안무가로 활동한 분인데, 기본 좀비들과는 다른 다이나믹하고 독창적인 좀비 동작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다양한 작품에 나왔던 좀비 동작을 시연하는 영상이라 신기하게 봤다.
마지막 코너는 좀비가 등장하는 책들이었다. 이전에는 아포칼립스 장르에만 등장했다면 소설이든 웹툰이든, 장르를 불문하고 좀비물이 많아지기는 한 듯. 시간 여유가 있다면 책을 봐도 좋을 것 같다.
<부산행>과 <#살아있다>의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 제작 현장에서 사용된 것이라는데, 평소 스토리보드를 볼 일이 없으니 굉장히 신기했다.
이건 킹덤 대본이었는데, 수능 끝난 이후로는 대본을 볼 일이 없다가 오랜만에 보니 느낌이 새로운데, 역시 영상보다는 글자로 된 게 읽기 좋은 것 같다. 대본이 훨씬 재밌더라.
기획전을 마치고 나오면 이렇게 정면에 스크린이 있는데, 이쪽은 상설전시관이다. 한국영화박물관이라는 이름답게 한국영화에 관한 물건들이 많이 전시되어있으니 특별전 보고 나오면서 구경하기 좋다.
세계영화와 한국영화의 역사 연표. 내가 아는 건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라 신기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 영화 촬영에 사용한 도구나 옛날 영화 포스터, 영화에 사용한 소품이나 의상 등이 진열되어있었다. 시대별로 한국 영화의 역사를 나눠 볼 수 있어서 아는 게 별로 없는데도 보기 어렵지는 않았다.
마지막은 트로피들. 보통 자기가 갖지 이걸 기부하나? 싶었는데, 예전 상들이 많고 아마 수집하던 사람이 기증한 것 같았다. 황금곰상 트로피가 생각보다 작고 귀엽더라.
종합적으로... 상대적 머글감이 엄청나게 느껴지는 전시들이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재미있겠고, 영화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라면 재미없겠고... 나는 뭐 아는 바는 없지만 구경해야지~ 하고 갔다가, 아는 게 없으면 박물관 전시는 괴롭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고 나왔다. 그나마 기획전시인 <지금 우리 좀비는>은 재미있게 봤다. 이것만 보려고 상암에 있는 영상자료원까지 가긴 좀 그렇고, 2층 도서관에서 영화를 빌려 볼 것이거나 지하에 있는 시네마테크 KOFA에 간 김에 들려 구경하기에는 괜찮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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