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세계도자관과 대한제국 첫 궁중 연회전
의궤전과 합스부르크 전을 보고, 커피 한잔 하고 조금 쉬다가 상설 전시관 구경을 나섰다. 특별전 두 개를 보고 상설전시장을 전부 도는 건 무리고, 사유의 방에 가서 반가사유상을 보고 그때그때 새로 생긴 전시 섹션이나 주기적으로 작품이 교체되는 서화관, 실감영상관 정도를 보는 편이다. 이번에는 전에 자세히 못 본 3층 세계도자관과 대한제국 첫 번째 궁중연회전, 새로 걸린 실감영상관 미디어아트를 보기로 했다.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된 중국 난파선에 실린 중국 도자기들. 중국 저장성에서 일본 하카다를 오가는 교역선이었는데, 길이가 약 34m, 무게가 200톤급 선박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용천요 청자 12,000여점, 경덕진요 청백자, 길주요에서 반든 백지흑화자기, 건요 흑유자기 등 중국 각지에서 만든 도자기와 자단목, 불교 공양구, 동전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신안에서 발굴된 도자기 위주로 전시가 되었었는데 세계도자기관으로 바뀌면서 공서양간 교류된 도자기에 대한 내용이 아주 상세하게 추가되었다. 15세기 후반 유럽에서 신항로를 개청한 이후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인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중국, 인도와의 교역이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수출된 자기들이 전시되어있다. 특히 항로 설명이 아주 자세하게 되어있어서 좋았다.
중국제가 많아서인지 대부분은 청화백자였다. 중국 자기가 유럽에서 유행하면서 유럽에서도 이를 모방한 도기들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네덜란드의 델프트에서 델프트 도기Delft earthenware가 생산되면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중국풍 도자기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델프트 도기 타일은 유럽의 많은 성에 장식되기도 했다고 한다. 확실히 동양 자기와는 다른 모양과 무늬가 눈에 띈다.
세계도자관 안쪽, 잘 안 보이는 구석에 시누아즈리와 관련된 7분 정도 되는 동영상을 틀어두었다. 독일 샤를로텐부르크성의 도자기 방, 드레스덴 일본궁전의 복원 자료 등을 사용해 만든 자료인데, 도자기만 단독으로 봐서는 잘 와닿지 않았던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왼쪽 스크린은 고장이 났는지 톤이 초록색으로 나와서 좀 아쉬웠다. 언제 고쳐지려나.
세계도자관을 나와서 대한제국 첫 궁중 연회전 그림을 보러 불교회화관을 들렀다. 이번에는 큰 탱화는 걸려있는 게 없었고, 스크린도 수리중이라 대형 불화가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대신 다른 곳에 전시된 불화 구경을 했는데, 대한제국 1909년에 그린 아미타극락회도가 대단했다. 이 아미타극락회도는 아미타불의 가르침을 듣는 제자들을 원일을 비롯한 화승 세 명이 그린 것인데, 색이 아주 선명하면서 사천왕과 보살, 제자들이 아주 세세하게 그려져있었다.
최석환의 <포도>. 처음에는 저 굽이굽이 그려진 가지가 대체 무엇인가 했는데, 포도나무였다. 포도는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이지만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들어왔는데, 열매가 알알이 맺히고 덩굴이 길게 이어지기때문에 다산과 가문의 번성을 상징해서 예술의 소재로 자주 이용되었다고 한다. 굵직한 포도넝굴과 흐리게 그려진 잎, 가득 열린 포도 열매가 굉장히 역동적이었다.
서예관에서 본 <무이구곡가>. 무이구곡가는 성리학자 주희가 무이산 아홉 굽이 계곡을 무릉도원이라고 극찬하면서 지은 시인데, 우리나라에서 많은 문인들이 애송했다고 한다. 이 10폭 병풍은 17세기 초서의 대가 동토 윤순거의 작품인데, 초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감탄이 나오는 작품이었다. 역시 대단한 작품은 누구든지 감명받게 만든다.
<갈대와 기러기> 작자는 미상, 20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그림이다. 갈대밭의 기러기를 노안蘆雁이라고 하는데, 노후의 평안을 의미한다고 한다. 갈대와 기러기 그림은 19세기 말부터 여러 화가가 그렸다. 이 병풍 왼쪽에는 장승업이 청나라 화가 화암의 화법을 따라 그렸다고 적혀있으나, 화암과 장승업의 화법과 이 병풍의 표현 방법이 매우 달라 아직까지는 작가를 알 수 없다고 한다. 크기가 엄청나게 큰 작품은 아닌데도 날아오른 기러기와 갈대밭에 앉은 기러기가 그림 스케일을 더 커 보이게 했다. 그런데 제목 보기 전에는 갈대밭인지 모를 정도로 갈대밭 같진 않더라.
이번에 대한제국 첫 궁중 연회 전시를 한다고 이렇게 포스터를 예쁘게 뽑아놨길래 큰 기대를 하고 갔는데, 이 병풍 한 점이 끝이었다. 아니 뭐 궁중연회 과정을 다 그려놓긴 했는데요.... 나는 좀 더.. 그림도 있고 의궤도 있고 악기도 있고 복식재현품도 있고 뭐 그런걸 기대했는데...
뭐 어쨌든 그래서 이 <신축진찬도>가 이번 대한제국 첫 번째 궁중연회 전시에 나온 작품이다. 박용훈 외 7인이 그린 총 10폭 병풍으로, 1901년 현종의 계비인 효정왕후 홍씨의 71세를 기념하는 잔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왼쪽부터 순종 황태자와 만조백관이 고종황제의 50세와 효정왕후의 71세를 경축하는 ‘진하‘ 의식 / 경운당에서 열린 효정왕후가 주빈인 연회 내진찬 / 같은 날 밤에 열린 야진찬 / 며칠 후 경운당에서 고종황제가 주최하고 내외명부와 진찬소 관원들이 참석한 연회 / 황태자(순종)이 주최하고 내외명부와 진찬소 관원이 참석한 연회 이렇게 5가지 행사를 그림으로 그렸다. 마지막 10폭째에 적힌 것은 진찬을 준비한 관원의 명단으로, 진찬을 준비하고 그림을 제작한 관청, 진찬소에 소속된 관원들의 이름이다.
주빈과 주최자가 누구인지, 내명부 사람들이 참석했는지 등 여러가지 요소에 따라 달라지는 연회 장식을 볼 수 있다. 특히 황색 장막이나 태극기 등 황제국의 위상을 의미하는 장식이 있어 고종 황제와 황태자의 황실 위상 강화 의도가 읽혀진다.
사실 그림은 장식장 안에 있기도 하고, 그림이 워낙 세밀해서 보기 힘들다. 뒷편에 이렇게 신축진찬도를 설명해주는 동영상을 틀어 두니 이걸 보는 게 더 이해하기 쉬웠다. 1층 특별전시관에서 하고 있는 의궤전을 보고 이 대한제국 첫 번째 궁중연회 전시를 보러 오면 주제가 연계되어서 더 좋겠다.
지난번에 못 보고 온 <금강산에 오르다>를 보려고 디지털 실감영상관에 갔다. 폭 60m, 높이 5m의 커브드 스크린에 약 10분 정도의 미디어 아트 영상을 틀어준다. 매번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오다보니 바뀐 프로그램들은 다 못 봤네. 나중에는 주말에 한번 와 봐야겠다. 혹시 미디어 영상만이라도 보고싶다면 유튜브에서 360도 영상을 볼 수 있으니 이걸 보면 되겠다.
https://www.museum.go.kr/site/main/exhiOnline/list
이번에 처음 보는 <금강산에 오르다>는 정선의 <신묘년풍악도첩>, 김하종의 <해산도첩>,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을 바탕으로 금강산의 사계절을 보여준다. 금강산의 일반이천 봉우리와 구룡폭포, 장안사 삼불암 등 금강산의 절경을 볼 수 있다. 언제쯤 진짜 금강산에 가 보려나.
10시에 와서 합스부르크전과 의궤전을 보고, 상설전시관까지 보고 나니 박물관이 닫을 시간이다. 정말 하루 종일 있었는데도 상설전시관은 다 못 봤네. 뭐 항상 이렇긴 한데... 다음 특별전은 내년 3월이나 되어야 있을 텐데 뭐가 올 지 궁금하다. 일단 12월에 예술의 전당에서 이집트전 한다니까 그걸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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