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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전시, 영화, 공연 후기

2021.12.21 국립중앙박물관 (1) 사유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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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1 국립중앙박물관 (1) 사유의 방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국보인 금동반가사유상이 두 점 있는데, 원래는 이 반가사유상을 3층 불교조각관 내에 작은 전시공간을 마련해서 6개월씩 번갈아가며 전시를 했었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씩 해외 반출이 되면 한가지가 더 오래 전시되기도 하고. 그런데 지난 11 12일 본관 2층에 이 금동반가사유상 두 점을 동시에 전시하는 사유의 방을 만들었다. 언제쯤 다녀올까 하다가 그래도 2021년이 가기 전에 다녀오자 싶어서 다녀왔다.

 

 

4호선 이촌역 2번출구는 이렇게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는 전용 출구다. 물론 박물관 안으로 바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밖으로 걸어야 했던 예전보다는 훨씬 편하다. 무빙워크도 되어있고, 벽에 문화재 모양 조명들도 설치되어 있어서 박물관 가는 느낌이 훨씬 잘 든다.

 

 

출구로 나오면 거울못이 나오고, 저 위로 보이는 건물이 박물관이다. 바깥에 CU편의점과 야미당이라는 식당이 있는데, 가격 차이가 좀 나긴 하지만 박물관 안에도 카페와 푸드코트가 있다. 식사는 푸드코트에서 간단히 먹는 게 더 낫고, 커피가 마시고 싶다면 이촌역 안의 커피니 가격이 더 저렴한 편이다. 

 

 

얕은 언덕을 쭉 따라 올라가면 드디어 박물관. 오른쪽 둥근 부분은 무료로 입장 가능한 상설 전시관이고, 왼쪽은 유료전시인 기획전시실과 극장 용, 도서관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하고 입장 마감은 폐관 30분 전인데, 수요일과 토요일은 야간개장을 해서 오후 9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우선 오픈시간에 맞춰와서 사람이 가장 적을 때 사유의 방을 보고, 점심을 먹고 특별전을 본 다음에 체력이 남아있는대로 상설전시관을 보는 게 오늘의 계획이다. 특별전이 두 가지라 조금 무리인가 싶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보기로 했다.

 

 

이전에는 전시관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다른 곳도 있었는데, 방역패스 때문에 다른 출입구는 다 막아두고 이곳만 열어두었더라.

 

 

안으로 들어가면 우선 QR체크인을 하고, 발열체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 다음은 공항검색대처럼 소지품 검사를 하는데, 중요시설인가가 되면서 이 시설이 필수가 되었다고 한다. QR체크인은 한번 했더라도 다시 상설 전시관으로 재입장하려면 다시 QR을 찍고 소지품 검사도 다시 해야하는 게 조금 귀찮기는 하다.

 

 

사유의 방은 2층에 있는데, 소지품 검사를 받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바로 사유의 방이다. 이렇게 다른 전시관과는 다르게 입구가 검은색으로 되어있고, 안내를 해 주는 직원도 한명 있다.

 

 

팜플렛을 미리 하나 주는데, QR코드에는 설명서가 있으니 미리 읽어보고 들어가는 게 더 좋다. 

 

사이트는 여기 -> https://www.museum.go.kr/sayu

 

사유의 방

1 특별한 경험의 여정 사유의 방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사유의 방’에는 국보로 지정된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어둡고 고요한 사유의 방

www.museum.go.kr

 

 

입구로 들어가면 긴 복도가 나오는데, 왼쪽으로 미디어 아트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장줄리앙 푸스의 작품 ‘순환’, ‘등대‘인데, ‘순환’이 5, ‘등대 3분으로 길이가 꽤 긴 편이다. 사유의 방은 입구와 출구와 다르니 미디어 아트를 볼 것이라면 처음에 보고 들어가는 게 좋다.

 

 

미디어아트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사유의 방 입구가 나온다. 공간감이 꽤 깊은 편이고, 저 멀리로 반가사유상 두 점이 전시되어있다. 

 

뭐 요즘은 국보에 번호를 안 붙인다고 하지만, 둘 다 금동 반가사유상이다보니 구분은 해야지. 왼쪽은 국보 78호 반가사유상, 오른쪽은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이 세워져있다. 오른쪽에 있는 반가사유상이 10cm정도 더 큰데, 멀리서 볼 때는 그렇게 크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전시실 자체가 안쪽으로 갈수록 약간 좁아지고, 미세하게 오르막이 있어서 반가사유상에 조금 더집중되는 느낌이 있다. 천장에는 알루미늄 봉이 박혀있고, 반가사유상 위에는 무한대 기호대로 조명이 달려있다. 알루미늄 봉이 약 2만개라는데, 끝 부분은 색이 다르게 마감되어있어서 자세히 보면 봉 하나하나가 잘 보인다. 흙벽은 계피와 편백을 섞은 황토 벽이라는데, 마스크를 쓰고있다보니 향이 강하게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색감은 확실히 다른 전시실과 구분되기도 하고, 조명과 함께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다.

 

반가사유상은 한쪽 다리를 다른쪽 다리에 얹고(반가)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사유) 불상을 말한다. 원래는 출가 전에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심하는 석가모니의 모습을  예전에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라고 외웠는데, 신라에서 미륵보살로 반가사유상을 많이 만들기는 했지만 반드시 반가사유상을 미륵보살로만 만든 건 아니라 그냥 반가사유상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고 한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7세기 초반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높이는 93.cm로 현존하는 금동반가사유상 중 가장 큰 크기라고 한다. 머리에는 장식이 없는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고, 상체는 목걸이뿐이라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하단부의 옷 주름이나 손, 발의 조형, 연꽃무늬 대좌는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원래는 저 머리 뒤에 튀어나온 부분에 광배가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도굴된 것을 1912년 이왕가 박물관이 구매한 것이라 출토 위치를 알 수 없다. 다만통일신라 이전, 신라에서 만들었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신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 고류지에 있는 목조반가사유상과 흡사한 모양새이기도 하다. 확실히 출토지가 밝혀진 것은 아니어서 삼국시대 불상으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머리에 쓴 관도 높이가 낮은 편이고, 상반신에 옷이 없고 대좌도 단순한 무늬라 절제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크기가 큰데도 오히려 옆에 있는 반가사유상이 더 커 보이기도 한다. 

 

 

 

 

국보 78호 반가사유상. 오른쪽에 있는 금동반가사유상보다 조금 이르게 6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83.2cm. 탑처럼 솟아있는 보관이 가장 눈에 띈다. 이런 보관을 일월식이라고 하는데, 원래 페르시아의 왕관에서 유래되어 동쪽으로 전파되면서 보살상의 보관으로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측면에서 보면 허리와 머리를 숙이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자세가 더 현실적이다. 조각상의 옷자락과 대좌까지 흐르는듯한 곡선이 만나서 마치 대좌가 몸의 일부분인 것 같기도 하다. 이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은 백제 불상이라는 설과 신라 불상이라는 설이 대립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고구려 불상이라는 설도 나와서 아직까지는 삼국시대 시기 불상이라는 것 외에 자세히 밝혀진 것은 없다. 

 

 

이전 불교조각관에 있을 때는 아무래도 전시공간이 넓지 않아서 좀 더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있었는데, 관람객이 조금만 많아도 몰입이 안 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거기에 반가사유상 2개를 6개월 주기로 번갈아가면서 전시되다보니 타이밍이 안 맞으면 원하는 반가사유상을 못 볼 수도 있었다. 이번에 사유의 방으로 옮기고 나서는 두 반가사유상을 한번에 볼 수도 있다는 점이 가장 좋고, 넓은 공간이 넓다보니 사람이 여러 명 있더라도 유물이 사람에 묻히는 느낌이 적어서 좋다. 

 

다만 일부러 사람이 없을 때 보려고 오전 10시에 맞춰서 왔는데도 사람들이 적은 편은 아니었다.다들 생각하는 게 같은지 사유의 방에 먼저 들리는데, 평일 오전 10시 기준으로 관람객이 10명 정도였다. 이 정도면 관람에 충분히 집중할 수 있을 정도이기는 한데, 사람이 많아지면 소음이 심하게 울릴 것 같더라. 지금이야 전시 초반이니까 반가사유상 두 점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걸 마케팅 포인트로 하는 것 같던데, 나중에는 시간대별로 예약을 받아서 관람인원을 제한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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