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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전시, 영화, 공연 후기

국립중앙박물관 메소포타미아실, 아스타나 고분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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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메소포타미아실, 아스타나 고분전 후기

 

 

 

세계문화관에 있던 이집트관 전시가 끝나고, 메소포타미아실이 새로 생긴다. 이번 메소포타미아실 전시는 2022 7 22일부터, 2024 1 28일까지 1년 반 정도로,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품을 가져와서 하는 전시다. 원래는 22일에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개시하고 며칠 후에 다녀왔다. 이건희전과 아스테카전은 이전에 봤으니, 이번에는 메소포타미아관과 상설전시관만 구경했다. 조금 급하게 일정을 잡았더니 VR체험은 예약을 못 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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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정말 좋아서 거울못 구경하기에도 좋았다. 점심 먹고 커피 한잔 사서 한 바퀴 도는데, 이전에는 없던 조형물이 생겼다. 하비에르 마린의 <귀중한 돌, 찰치우이테스> 라는 작품인데, 지름이 500cm, 폭이 140cm인 거대한 조형물이다. 일일이 해체해서 가져와 재조립한 것이라던데, 아스테카 전시를 봤거나 볼 예정이라면 이것도 꼭 보고 들어가면 좋겠다. 

 

 

상설전시관 3, 이전 이집트관이 있었던 곳에 메소포타미아관이 생겼다. 따로 리플렛이 있지는 않고, 이 뒤로 들어가면 전시가 시작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외래어 고유명사는 전부 메소포타미아 지방 고유어인 악카드어 원어의 발음에 가깝게 적었는데, 그래서인지 평소 알던 용어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사실 뭐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해 아는 내용이라고 해도 아라비아 반도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 강을 끼고 번성한 기원전 문명 이 정도지 별다른 배경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공자도 아니고, 기원전이니 그렇게 화려한 유물은 없을거라 예상하고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유물이 많이 왔더라.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현재 이라크가 있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비옥한 지대에서 발생했다. 기원전 3400~3000년경 최초의 도시가 탄생했고, 쐐기문자를 발명해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으며 예술과 건축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농업이 발전하고 생산물을 재분배하는 경제활동이나 신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활동 등을 이번에 전시된 점토판이나 인장, 장신구, 통치자의 상 등 다양한 유물에서 알 수 있다.

 

 

전시관 안은 이런 느낌인데, 작은 쐐기문자 점토판이나 인장들이 벽을 빙 둘러 전시되어있고, 가운데에는 그릇이나 조각상 같은 조금 큰 사이즈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다. 대부분의 유물이 벽에 전시되어있고, 동선 표시가 따로 되어있는 게 아니라 관람하기가 조금 불편하다. 아직도 어떻게 돌아야할 지 잘 이해가 안 되긴 하는데, 일단 ㄱ자 동선으로 쐐기문자판을 다 보고 뒷편 인장 유물을 본 후 신전 관련 유물을 보는 게 가장 나을 것 같다.

 

수로에 관한 기록, 기원전 2600~2350년
황소 장식 그릇 조각, 기원전 약 3300-2900년
황소 머리 장식, 기원전 약 2100-2000년

 

기원전 3000~2000년 대의 작은 유물들. 아무래도 시기가 기원전이다보니 조각인 것들이 많다. 슈메르어로 적힌 점토판 문서와 신전에 봉헌된 물품들 등 이것저것이 있는데, 황소 모양이 많다. 특히 황소 머리 장식은 그릇이나 가구, 악기 부터 건축과 기둥 머리 등에 다양하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맥아와 보릿가루 수령 내역을 적은 장부, 기원전 약 3100-2900년
구누라 여신의 옥좌를 위한 물품 목록, 기원전 약 2112-2004년
파종 축제 때 바칠 동물의 수를 적은 장부, 기원전 2043년경
마르둑 찬가, 기원전 약 100-1년

 

점토판에 새긴 쐐기문자들. 기원전 3400년경 이라크 남부에서 최초의 문자가 발명되었다. 초기에는 주로 회계에 사용되었는데, 이후 의료와 과학, 역사,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문자가 사용되었다. 충적토로 만든 점토판에 갈대 줄기 끝을 뾰족하게 만들어 글자를 쓴 것이라 쐐기 형태의 문자가 되었다. 원래는 슈메르어를 적으려고 고안된 것이지만 악카드어를 쓰는 데에도 사용되었고, 나중에는 서아시아 전역에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맥아와 보릿가루 수령 내역을 적은 장부는 초기 슈메르 쐐기문자로 적혀있는데, 숫자 기호와 그림문자를 복합적으로 사용해 간단한 거래 내역을 적었다. 이후에 새겨진 장부들이나 마르둑찬가는 다른 문자로 적혀있는데, 뭐 알아볼 수가 있어야지. 바빌리의 수호신 마르둑을 찬양하는 노래를 적은 바르둑 찬가에는 슈메르어와 악카드어 문자가 한 줄씩 번갈아 가며 적혀있다고 한다. 이때 슈메르어는 이미 사멸된 언어였다고.

 

 

전시실 가운데에 이런 스크린이 두 개 있는데, 벽에 적힌 설명보다 더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 유물을 선택하면 사진과 유물의 앞뒷면, 번역한 내용과 설명까지 볼 수 있다. 벽에 전시된 유물은 사람이 많으면 관람하기 어려우니 실물을 보고 나와서 스크린으로 설명을 보는 게 더 이해하기 좋았다. 두 대라 많은 편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서 꽤 오랜시간 이것저것 눌러 읽어볼 수 있었다. 

 

사자 모양의 인장 부적, 기원전 약 3300-2900년
여인들과 그릇을 새긴 원통형 인장, 기원전 약 3300-2900년
상자를 나르는 사람들과 여신을 새긴 원통형 인장, 기원전 약 2600-2500년
이쉬타르 신상에 기도하는 장면을 새긴 원통형 인장, 기원전 9세기 후반-8세기 초반

 

인장들. 사자모양의 인장부적처럼 눌러 찍는 인장 부적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원통형 인장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주로 행정업무를 위한 것이었지만 개인의 정체성도 나타냈다고. 음각으로 조각을 해서 점토 판에 굴려 찍는 방식인데, 가운데 있는 구멍에 실을 꿰어 들고 다녔다고 하더라. 

 

 

인장 전시가 끝난 벽면에는 이렇게 스크린이 두 개 있는데, 하나에서는 인장 부적을 점토판에 찍는 방법을 보여주고, 한쪽에서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큐레이터가 인장 부적에 대한 설명을 해 준다. 약간 길긴 하지만 이걸 보고 나면 인장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봉헌용 그릇, 기원전 약 2600-2350년
수호 여신 라마의 비, 기원전 약 1307-1282년

 

메소포타미아인들이 믿던 종교는 한때 3,000명의 신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신이 있었는데, 이 신들은 시대에 따라 성격이나 위상이 변화했다. 도시마다 중시하는 신과 그에 따른 의례가 다르기도 했다. 기원전 4000~3000년경에도 이미 대규모의 신전이 지어지기 시작했고, 신전 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신들의 축복을 바라는 의례가 있었고, 작은 조각상이나 그릇을 봉헌했다고 한다.

 

 

구역이 바뀌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관한 인터뷰가 나오는데, 교수님이 설명을 잘 해주셔서 꽤 볼만하다. 아니 근데 정말 관상이 교수님처럼 생기셨다.

 

금귀걸이, 초커와 목걸이 구슬, 기원전 약 2600-2500년
목걸이와 팔찌, 기원전 약 2600-2500년

 

이 뒤로는 금귀걸이와 초커, 목걸이, 팔찌 등 메소포타미아 남부, 우르에서 발견된 왕실묘 부장품이 전시되어있다. 금은보석으로 만든 인장과 그릇, 장식품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메소포타미아에서 나지 않아 교역으로 구해야 하는 재료들도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두상, 기원전 8세기 후반-7세기 초반
통치자의 두상, 기원전 약 2300-2000년

 

그 뒤로는 조금 더 후기 시대의 조각상들. 대부분은 두상이다. 기원년 3000년 이후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많이 제작된 인물상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릴 수 있는 명문을 새겨 신전에 봉헌하는 데 사용되었다. 특이한 것은 통치자의 초상인데, 개별 인물의 특징이 아니라 왕위에 오를 만한 자격으로 여겨지는 속성을 조합해 완성했다. 큰 눈과 수염, 특정한 옷과 머리장식, 튼튼한 팔과 큰 근육 등 대부분이 비슷한 모습이다.

 

쿠쉬룩

 

쿠쉬룩은 수메르어로 상자라는 뜻인데, 4미터 높이의 미디어 큐브에 메소포타미아의 상징인 땅과 강,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인장, 일상을 기록한 쐐기문자가 번갈아가면서 나온다. 큐브모양이어서 뒷면도 패널인가 했는데, 그렇지는 않고 3면에만 미디어 아트가 나오더라. 인상 무늬를 더 큼직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조공 행렬에 선 외국인 마부, 기원전 약 721-705년
앗슈르 왕세자, 기원전 약 704-681년

 

기원전 9세기 초부터는 앗슈르 제국이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차지했는데, 전성기인 기원전 7세기에는 무려 이란 서부부터 지중해, 이집트까지 확장되었다. 앗슈르 제국의 전성기를 열기 시작한 앗슈르나찌르아플리 2(기원전 883-859)는 앗슈르 제국의 수도를 님루드로 옮기고 신전과 궁전 등 대규모 건설 사업을 진행했는데, 궁전 내부는 앗슈르나찌르아플리 2세와 군대, 신하 시종들이 의례 / 전쟁 / 사냥 등에  참여하는 장면을 부조로 조각한 석판들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번 전시에 전시된 부조들이 전부 님루드의 궁전이나 신전에서 온 건 아니지만 실제 건물이 어떤 느낌일지 알 수 있다. 

 

맹견 상, 기원전 1000년대 중반

 

이 맹견 상은 내부가 비어있고 안료가 일부 남아있다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잘 모르겠다. 정면으로 봤을때는 우리나라 해태상과도 조금 비슷한 것 같고 하여튼 귀엽다. 기원전 1000년대에 만들어진 점토상이 이렇게 남아있는 게 가장 신기하더라. 

 

사자 벽돌 패널, 기원전 약 604-562년

 

표면에 유약을 바른 벽돌을 사용해서 아쉬타르 여신을 상징하는 사자를 표현한 벽돌 벽의 일부다. 벽돌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였는데, 고대 사람들은 인간이 만들어 질 때 사용된 재료가 충적토여서 이 충적토에 진흙과 동물의 배설물을 더해 벽돌을 만드는 과정을 창조 자체로 여기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바빌리는 벽돌 건축물로 유명했는데, 기원전 6세기에 나부쿠두리우푸르 2세가 세운 ‘이쉬타르 문‘과 ‘행렬의 길‘이 대표적이다.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 일부 복원되어있다고 적혀있던데, 이건 또 어떻게 떼어왔을까 싶다.

 

이번 전시에는 각각 머리 방향이 다른 사자 벽 두 개가 양쪽으로 장식되어있는데, 개인적으로 메소포타미아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유물이었다. 아쉬타르 문에서 ‘신년 축제의 집’ 비트 아키투까지 이어지는 행렬의 길에 이 같은 사자상 120구가 장식되어있었다고 한다. 

 

벽돌, 기원전 9세기

 

이 벽돌은 기원전 9세기 벽돌인데도 아직 선명하게 무늬가 남아있다. 파랑, 노랑, 검정, 흰색으로 무늬를 그린 벽돌인데, 이렇게 유약을 바른 벽돌은 궁전 벽을 장식할 때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메소포타미아실이 새로 생긴다고 할 때부터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흥미진진한 전시였다. 관람 동선이 애매한 게 조금 불편하긴 한데,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메소포타미아 관련 전시라는 점만 봐도 재밌게 볼 수 있었다. 어차피 뭐 내가 연구자도 아닌데, 신기하게 구경한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메소포타미아실에서 옆으로 조금 걸어오면 중앙아시아실이 있는데, 22 7 16일부터 영원한 삶의 집, 아스타나 고분전을 하고 있다. 아스타나 고분은 위구르 지역, 투루판의 옛 수도인 고창고성 부근에 있다. 이것은 3세기경부터 8세기 후반까지 지배계급의 공동묘지가 만들어지던 곳으로, 다양한 부장품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이번 중앙아시아실 아스타나 고분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오타니 컬렉션 중 아스타나 고분 출토품 85점에 대한 조사 성과를 공개하는 전시라고 한다. 뭐 내가 본다고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고, 평소에 못보던 유물이 있을까 싶어서 온 김에 들려봤다. 

 

구슬무늬 토제 명기와 나무받침, 6-7세기

 

잔과 사발, 굽다리 접시, 항아리 등 여러 그릇이 한 벌로 된 구슬무늬 토제 명기. 겉은 검은색으로 칠하고 붉은색과 흰색으로 무늬가 그려져있다. 아래는 구슬무늬 그릇들을 올려놓았다던 나무 받침인데, 비슷한 시기의 아스타나 고분에서 많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명기는 음식을 담아놓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마지막 제사를 지내고 무덤 주인의 머리맡에 두고 무덤 입구를 막으면 죽은 사람이 저승에서 영원히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산 사람을 시신과 같이 묻는 순장은 동주 시기 이후부터 인형을 만들어 붇는 방식으로 바뀌었는데, 죽은 사람이 현세에서 누렸던 삶이 내세에도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문인, 무인, 환관, 여인, 야사 등 다양한 인형을 만들어 무덤 옆방에 넣었다고 한다. 이런 인형들은 주로 나무에 흙을 붙이고 색을 칠해 만들었는데, 인형 아래로 뾰족한 나무 살을 흙바닥에 받아 세워두었다고 한다. 

 

고분 속을 비슷하게 재현해 놓은 곳도 있었는데, 천장에 복희와 여와 그림(당연히 복제)를 그려놓아서 정말 널방 안에 들어간 느낌이 들게 한 것이 좋았다. 묘지석이나 다른 유물도 더 있기는 하지만 원래 전시하던 오타니 컬렉션 거의 그대로다.

 

 

 

다른 전시관들은 크게 달라진 게 없어서 얼른 지나갔다. 중국실에서 가징 좋아하는 반송재에 잠깐 들리고, 도자실 안에 있는 시누와즈리 전시와 미디어 아트 전시관을 얼른 둘러보고 2층으로 내려왔다. 

 

 

당연히 반가사유상이 있는 사유의 방에 갔는데, 이날은 사람이 많아서 조금 관람하기가 불편했다. 사유의 방에서 여유있게 감상을 하고 싶다면 오픈시간인 10시에 맞춰서 오거나 점심시간이나 끝나는 시간에 맞춰 오는 것이 좋겠다. 

 

 

이건 어디서 찍었지... 아마 서화관에서 찍은 것 같은데, 요새도 맞는 말인 것 같다. 다만 요즘은 지방도 돈이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을 겁니다...

 

상준 / 희준, 조선 15-16세기

 

이번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처음 온 친구와 간 거라 1층도 간략하게 돌았다. 뭐 국보급 유물은 다 그 지역 국립박물관에 있지만, 그래도 가볍게 둘러보기는 괜찮았다. 이번에 본 유물 중에서는 제사 때 술이나 물을 담았던 동물모양 제기인 상준 / 희준이 가장 귀여웠다. 원래는 코끼리와 소 문양이 있는 그릇이었는데 성종 때 국조오례의서례가 간행된 이후 코끼리와 소 모양의 제기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여튼 상준이 너무 귀엽다. 

 

 

디지털 실감영상관 1관에 새로운 영상이 추가되었다고 해서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렸는데, 운이 없게도 오후에 고장이 나서;;; 상영을 안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고구려관 옆에 있는 실감영상관 3에서 강서대묘와 무덤 구조 영상을 봤다. 이번에는 자리가 여유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서 봤는데, 실감영상관 1 영상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줘서 좋았다.

 

요새 특별전 스케줄이 꽤 빽빽하게 있어서인지 국립중앙박물관에 꽤 자주 온 느낌인데, 새로 생긴 실감영상관 1 프로그램도 못 봤고 이건희전 끝나면 또 새로운 특별전을 할 테니 조만간 다시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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